2018.06.02 작성
787기고, 어제못썼던, 그렇지만 꼭 남기고 싶었던 개인적인 훈련소 후기를 적어보려한다. 밑에서부터는 개인사니까 tmi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감정/고민 공유하고싶어서 그러니까 심심하면 읽어주면 좋겠다.
살면서 힘든일 한번 해본 적 없고 내 방 청소 내가 해본적 손에 꼽는다. 부모님이 본인들이 가능한 범위내에서 항상 최상의 인프라를 제공해주셨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조건 병원데려가셨다.
선천적으로 체육보단 앉아서 하는걸 좋아해서 여타 님자애들처럼 축구같은 것도 잘 안하고,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문과반이라 남자부족하다고 사정사정하면 그때서야 한두번 나가고 그냥 나머지시간엔 그냥 수능 공부했다. 체육시간에도 그냥 천막에서 여자애들이랑 수다떨고 놀았고. 그게 더 재밌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다행히 맘충들처럼 나 버릇까진 없게 키우시지는 않아서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성격도 둥글둥글했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선에서. 내가 간혹 실수로 선을 넘으면 화풀릴때까지 사과했고,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질이 좋지 않은 고등학교에서, 서울 최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성적을 가진 나는 거의 친구들의 과외선생님이었고, 항상 쉬는시간마다 한두명씩 나한테 수학이나 영어문제를 묻곤했다.
물론, 친구들이 잘되면 나도 좋으니까, 또 내가 중학교 최하위권이었다가 여기까지 올라온경험을 해봐서 그게 얼마나 값진건지 알았고, 친구들도 이걸 느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것고있고. 그래서 물어본 문제는 물론, 유사 유형 기출문제도 알려주면서 성심성의껏 도와주곤했다.
수능 성적도 그럭저럭 잘 나왔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가서도 누구보다 재밌게 놀았다. 학생회도하고, 중앙동아리도했고, 미팅 나가면 나쁘지는 않은 외모와 말재주덕에 나가면 거의 항상 선 애프터도 받았고 '여자 자주비꾼다'라는 오명을 쓰면서 불장난식 연애도했고, 이별의 아픔도 겪었다. 이때까진 이때 이별한 이픔이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경험이었다.
또 뒤늦게 눈뜬 클럽문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공부만 했던 '놀줄 모르던' 대학동기들은 나에게 이런 유흥문화나 연애문제를 묻곤했고. 또 나는 성심성의껏 즐기도록 도와줬고, 미팅에서 말잘 못하던 동기를 띄우ㅏ주고, 클럽에서 나랑 춤추던 여자분 친구를 내친구에게 소개해주며 또 성심성의껏 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까지의 나는 항상 '도움을 주는 위치' '뒤쳐진 친구들을 이끌어주는 위치'에 너무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입대영장이 나오고, 카투사에 떨어지고, 친한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쓴 공군 일반병에 합격했고. 학기 끝났을때부터 4월초까지는 그냥 미친듯이 놀기만했다. 그러다가 입대 d-20이 뚫리자, 입대가 비로소 실감이 됐다.
'내가 지금까지 누리는 이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일상을 2년간 포기해야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한국이 미워지고, 사회주의도 하나의 사상으로서는 이해해보고싶던 내가 북한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다가 한자릿수가 뚫리자, 그냥 너무 우울했다. 뭘해도 힘이 나질 않았다. 클럽에가도, 술을마셔도, 그냥 우울했다.
그렇게 입대당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입대를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있을 빠박이들을 보며 더 괴로워졌다. 부모님을 볼 수 있던 통로가 천막으로 닫혔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경례할때 아마 몰래 울었던거같다.
훈련소는 지옥이었다. 특히 나에게는 더더욱. 정리라곤 하나도못하던 내가 내 관물대를 '각'을 맞춰 정리하는것민으로도 머리가 터질거같았고, 나한테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사람, 아니 사람들도 처음봐서 너무 적응이 안됐다. 거기다 비합리적인 군대 시스템에, 불합리한 인간이하의 대우 대우,처음하는 강한 육체적 활동, 남자보다 여자랑 말이 더 잘통하던 나에게 주어진 남자만 있는 환경. 적응하면 두각을 드러내지만, 그 전까지가 항상 힘들던, 빠르게 적응하는걸 어랴워하던 내 성격등등... 하나하나가 다 지옥같았다.
다른 동기들도 정말 힘들었을꺼다. 나만 힘들었다는거 전혀 아니다. 근데 군대는 너무 신기할정도로 나랑 너무 상반된 공간이었다.
다행히 타고난 말재주덕에 인간관계에는 무리가없었고 친해진 동기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곤했다. 너무 고마웠다. 혹시 이 글 보고 우리 호실 그녀석 같다면, 다시한번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말하고싶다. 그렇지만 고마움과는 별개로, 내가 너무 위축되기 시작했다.
항상 남들한테 인정받고, 남들을 도와주던 나였는데, 애물단지 취급받고, 항상 도움을 구걸해야하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해보였다.
또, 공군 특성상 잘난놈들도 너무 많앗다. 발에 채이는게 sky였고, 외국대학에, 직장가진사람에, 석사도있었다. 공군만 그런지 몰라도, 키크고 잘생긴놈들도 너무 많았다. 내가 자신있던 모든 분야에서 나를 압도하는 녀석들이, 내가 제일 못하는 일들도 척척해내고 있었다. 미친듯한 열등감이 들었다. 더 위축됐다.
이런것들이 겹치니, 결국 골병이났다. '진주병'이라거 불리는 독감에 좀 심하게 걸렸다 2주차부터. 하지만 아프다고 최대한 티내지 않았다. 첫주차에 아프다했다가 귀향간 소대 사람이 생각났고, 또 안그래도 애물단지였을 내가 아프기가지 히면 진짜 한심하게 보일거같고, 또 동기들이 환자가된 나를 또 챙겨야하는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열이 38.5도에 오른 채 평소같았으면 잘 풀었을지도 모르는 특기시험을 허무한 계산실수를 연발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영어문장이 어지러운탓에 갑자기 독해가 되지 않아 두번 세번 읽으며 시간을 허비하며 특기시험을 완전히 조졌다.
특기발표까지, 나에게 한줄기 기적이 오길 바라며 1,2지망을 상향지원하고, 3지망에 헌병을 적었다.
물론, 헌병이 되었다. 다들 물었다. ♡♡이는 대학도 좋은데 다니는데 왜 헌병이야? ♡♡아 넌 왜 헌병이냐?
변명하기 싫었다. 그냥 특기시험 망쳤다고 했다. 내가 두각을 나타낼 마지막 찬스를 날려버린것이다.
그때부터, 호실사람중 누구도 나에게 생활관련해서 질문하지 않았다. 난 어느새 '챙겨야할 사람'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조교에게 칭찬받자, '와♡♡이가 훈련소에서 칭찬받을날이 왔어'라며 장난스럽게 놀리던 호실 사람들을 보면 내가 어떤 사람으로 굳어졌는지 알수있었다.
나의 능력부족을 인정하는데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고, 인정하거 난 다음부터는 최대한 열외만은 하지말자 라는 생각으로 컨디션이 좋던 안좋던 모든 주요훈련/실습평가에 이악물고 참여했다. 뒤쳐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직 낫지않은 독감은 그와 함께 점점 심해져갔고, 나는 수진가서 타온 약을 정량보다 1.5배씩 먹고,떨어지면 또 수진가서 약타오고 그렇게 버텼다.
이렇게 버티다, 38도의 열을 갖고 마지막 행군훈련을 마치자, 긴장이 풀렸는지 열이 40도까지오르고, 목에서는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버티다가 더이ㅣ상 안될 것 같아서 가입실을 허락받고, 가입실/입실자증 내 상태기 가장 안좋다는 군의관님의 진단과 함께 주사만 5방을 밎고 수액만 3~4통을 맞았다. 당연히 수료식연습도 참여하지 못했고, 수료 당일 어지럽고 힘든채로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내 가입실로 내 짐 대신 싸줬던, 끝까지 민폐만 끼쳤던 호실사람들, 그리고 친해졋던 소대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아, 나 나갈때 창문밖으로 '♡♡아 잘가'라고 크게 외쳐줬던 다른호실이었지만 내가 진짜 멋지다고 생각한 형 고마워요)
부모님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괜찮은척을 하며 부모님 차를 탔고, 지금 집에서 약먹고 쉬더니 좀 괜찮아져서 오늘은 친구들 얼굴이나 잠깐 보려고 한다.
그리고 어제는 너무 걱정돼서 한숨도못잤다. 나처럼 몸도 못쓰는 놈이, 헌병이라는 힘든 특기를 잘소화할수있을까? 앞길이 너무 막막햇다. 특기학교 성적은 잘받을수 있을까? 세세한거 잘 못챙겨서 실습 다 망하고 종평으로 겨우 등수 중간에 맞춘 나인데, 헌병교육 실습은 잘할수있을까...
자대 잘못가면 진짜 훈련소보다 더 고생하는건아닐까... 난 어디까지 버텨야할까? 이런 불안감이 엄습해오자, 잠을 잘수가 없다. 이미 입대전에 자신감넘쳤던 나는 사라진지 오래고, 지금은 그냥 불쌍한 환자하나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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